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독일 재통일 (문단 편집) === [[영국]] === [[마거릿 대처]] 당시 영국 총리는 독일의 재통일에 가장 강경한 반대 의사를 표출했다. 전통적으로 '유럽의 세력 균형의 수호자'를 자처했던 영국 정부는 '통일 독일'이라는 국가가 등장했을 시 일어나게 될 세력 붕괴를 걱정했다. 독일 통일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만난 [[소련 공산당]] [[서기장]] [[미하일 고르바초프]]와의 회담에서는 대놓고 '영국은 독일의 통일을 바라지 않는다.'고 하면서 [[소련군]]이 계속해서 [[동독]] 영토에 진주할 것을 요청했다. 심지어 1989년 12월 유럽 각국의 정상들이 [[스트라스부르]]에서 모였을 때 대처는 [[서독]] 수상 [[헬무트 콜]]이 뻔히 쳐다보고 있었음에도 '우리는 지난 대전에서 독일을 2번이나 꺾었다. '''[[나치 독일|이제 그들이 다시 돌아온다!]]''''는 엄청난 수위의 발언을 내뱉기도 했다. [[http://www.spiegel.de/international/europe/the-iron-lady-s-views-on-german-reunification-the-germans-are-back-a-648364.html|#]] 이때 대처가 제시한 방안은 통일 기간을 5년 이상으로 잡고 분단 상황을 당분간 유지하자는 것이었다. [[나치 독일|2차 대전 직전 독일]]의 지도를 들고 와 독일이 또 동프로이센, 힌터포메른, 슐레지엔, 노이마르크, [[오스트리아 병합|오스트리아]], [[뮌헨 협정|주데텐란트와 체코]], 단치히 회랑 등 2차 대전 이후 잃어버린 영토를 다시 요구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당시 대처는 헬무트 콜 수상이 무력을 써서라도 폴란드와 소련에게서 빼앗긴 영토를 돌려받아야 한다거나 영토 반환이 안 되면 실향민들에 대한 보상이라도 받아내야 한다고 발언했다고 영국 언론에 흘렸는데 후일 슈피겔 지에 따르면 헬무트 콜은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냐고 노발대발했다고 전해졌다.] 당시 [[더 선]] 같은 영국 언론사들도 전부 독일의 통일을 ''''[[제4제국]]'의 탄생'''표현하면서 단호하게 독일의 통일에 반대하는 보도를 하였을 정도로 영국 내 통독 반대여론은 굉장히 강한 편이었다. 그렇지만 상술했듯이 [[동독]]이 이미 붕괴되기 직전인 상황에서 이러한 주장은 현실적으로 실행되기도 힘들었던 데다 콜 수상과 겐셔 외무장관이 [[오데르-나이세 선]]의 승인과 같은 유화적인 정책을 내놓았기 때문에 마지못해 통일을 승인해 주었다. 다만 그러고도 신경쓰였는지 주영 프랑스 대사에게 '독일의 위협에 영불이 다시 한 번 힘을 합쳐야 한다'고 하기도 했으며 역사학자와 외교 전문가들에게 '통일 독일이 얼마나 우리에게 위협이 될까'라고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고 전해졌다. 독일 재통일에 신경질적 반응을 보이던 대처는 1985년에 '영국은 독일 통일과 관련되어 독일 주민들의 의사를 무조건 지지합니다.'라고 공식석상에서 발언한 적이 있다. 당연히 5년 사이의 말뒤집기에 대한 비난이 있었는데 이에 대한 대처의 반응은 '그땐 그렇게 빨리 통일될 줄 알았나?' 였다고 한다. 이는 오히려 대처까들이 대처를 까는 명분이 되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